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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부터 만기가 된 은행권 정기예금이 아직 관망세다. 그 규모는 67조원에 이른다. 투자처가 마땅치 않자 재예치가 발생하고 있다. 자금을 다시 은행에 묶되 1년보다 6개월이라는 짧은 만기를 선호하는 현상도 엿보인다.
5일 한국은행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9월 말 기준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은 968조원이다. 잔액은 9월 중 3조7천억원 줄었다. 지난 3월과 4월 각각 8조8천억원, 6조5천억원씩 준 점을 염두에 두면 9월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자금 이탈 현상은 뚜렷하지 않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주로 법인 자금 위주로 소폭 줄었다”며 “지난해 말 늘어난 은행권 정기예금은 주로 가계 자금인데, 아직 빠져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정기예금은 지난해 4분기(10∼12월)에만 67조1165억원 급증했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은행들이 연 5%에 육박한 ‘고금리’를 내건 영향이다. 정기예금과 적금 만기가 보통 6개월∼1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 하반기에 저축은행을 포함해 전 금융권에 약 100조원의 뭉칫돈이 만기가 돌아온다.
만기에 이른 뭉칫돈이 늘고 있으나 그 움직임은 잠잠하다. 금융권에선 정기예금 외 다른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서로 풀이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주식시장, 부동산 시장 모두 안 좋아 정기예금 금리 만큼 수익률을 내는 곳을 찾기 힘들다. 재예치하고 지켜보자는 투자자들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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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근 은행권은 정기예금 금리를 연 4%대까지 얹어주고 있다. 지난 30일 기준 19개 은행 정기예금 상품 중(1년 만기) 최고 금리가 연 4% 이상인 상품이 전체 37개 중 절반이 넘는 20개였다. 반면 주식시장 수익률은 하락하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31일 2300선이 재차 붕괴되며 1월5일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 상단이 연 7%까지 치솟자 거래가 위축되고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은행에 돈을 맡겨두고 경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이다. 대신 길게 돈이 묶이는 것보다 6개월 단위의 짧은 만기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은행들도 1년보다 6개월 만기에 이자를 더 주는 ‘금리 역전’ 상품을 선보이며 관망세가 짙은 고객들의 자금을 끌어당기고 있다.
은행권 자금은 제2금융권으로도 잘 이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금리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데다 고금리 장기화로 제2금융권 부실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서로 보인다. 가령 저축은행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2일 기준 연 4.11%(1년 만기)다.
이는 은행과 달리 제2금융권은 자금 이탈 속앓이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금융권 역시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정기예금이 많은 상황이나 수익성 악화 우려로 금리를 크게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경우 예금금리 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 보니 자체보유금 등으로 자금 이탈 대응에 나서고 있다.